2019년 7/8월호

Page 10

칼럼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아버님은 손목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상처를 보여주면서 이것이 총알 자국이라며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낙동강 전투가 치열할 때에 아버님은 북한 인민군으로 참전하셨지요. 본래 평안남도 대동군에 있는 한 마을에서 살고 계셨는데 어느 날 트럭 한 대가 동네에 들어오더니 싸울 능력이 있는 남자들을 모두 차에 태워서 낙동강 전투에 투입시켰다는 것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아버님은 30세 나이였지만 인민군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낙동강 유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장에 와보니 전투가 치열하다 못해 참혹할 지경이라고 하셨지요. 고지 탈환을 위해 전투를 벌이는 상황이었는데 밤만 되면 인민군들이 맹렬한 공격을 퍼부으면서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갔었습니다. 아버님은 이전에 먼저 올라간 인민군들이 모두가 죽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의 인민군 부대가 밤에 고지를 향해 진격하라는 명령을 받자 아버님은 올라가면 죽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올라가던 도중에 나무 뒤에 숨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총으로 손목을 쏘았지요. 순간 고통과 함께 뿜어나오는 핏줄기를 부여잡고 내려와 부상당했다고 상관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로 인해 아버님은 환자가 되어서 북쪽으로 후송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강원도에서 유엔군에게 붙잡히게 되었고 이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승만 대통령께서 북한 인민군 포로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바람에 아버님은 남한, 대한민국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남한에서 생활하시면서 어머님을 만나게 되므로 제가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지요.
비록 남한을 선택하시긴 했지만 30년을 살아온 북쪽 고향을 잊을 수는 없었던가 봅니다. 오래전에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방송할 때면 TV 앞에서 눈을 떼지 않으시며 이산가족들의 처지를 들으시며 우시곤 하셨지요. 가까이 있는데 갈 수 없었던 북쪽 고향은 아버님의 마음을 더욱 애타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북쪽 고향을 그리워하던 아버님은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워만 하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지요.
1950년 6월 25일 주일 새벽 4시에 시작된 북한의 남침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남겼습니다. 남한 쪽에서는 생각지도 못하고 당한 전쟁인지라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당시 미국 트루먼 대통령은 미군이 한국전에 참전을 결정하는 데에 10초도 안 걸렸다고 회고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유엔 상임이사국이었던 소련 대표의 불참으로 유엔군이 한국전에 참전하기로 결정하게 되는 기적도 일어났습니다. 유엔군이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민군은 남한을 낙동강까지 밀어붙였지요.
3 개월 만에 남한의 운명이 끝날 것 같았던 시기에 맥아더 장군의 지략으로 인천 상륙작전을 성공하게 되므로 1950년 9월 28일 서울을 다시 찾게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후 1950년 10월 1일 국군과 유엔군이 처음으로 삼팔선을 넘어 북진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 남한에서는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전쟁 발발 후 4개월 만인 1950년 10월 26일에는 압록강까지 국군과 유엔군이 진격하는 성과를 이루었지요.
여기에서 전쟁이 끝났어야 했는데 갑자기 30만이나 되는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전세가 역전이 되기 시작합니다. 겨울이 접어드는 이때 국군과 유엔군은 다시 밀려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북한 인민들이 피난길에 나서면서 1950년 크리스마스 때에는 미 10군단장 앨몬드 장군의 결단으로 흥남 부두에서 북한 인민 1만 4천명을 군함에 태워 피난시켰던 흥남 부두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국 전쟁은 미국에서 잊혀진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전쟁이지요. 당시 169,165명의 젊은 미군들이 한국 땅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사망한 미군은 54,246명이고, 상해를 입은 군인들은 103,284명이며, 전쟁 중 행방불명된 미군은 8,196명이며, 포로로 잡혀간 미군이 3,746명입니다. 어릴 때 6월 25일이면 학교에서 불렀던 노래가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이었습니다. 미군뿐 아니라 수많은 유엔군의 희생이 오늘날 남한의 자유와 발전을 가져온 거름이 된 것입니다. 한국 전쟁, 절대 잊을 수 없는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입니다.

김기천 목사

알버커키 연합감리교회

 

 

 

 

 

 

 

 

 

 

 

 

 

 

 

 

 

 

 

 

 

 

 

 

 

 

 

 

 

 

 
 
서울에 있는 전쟁 기념관 앞의 16개 UN군 6.25 참전국 국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