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광야의 소리 2022-01/02 목차로 가기   p19-p20  
   

참 잘 했다! 

   
   

며칠전, 코로나 팬데믹후 참으로 오랫만에 가까이 계신 목사님 내외분들과 아이홉에서 아침을 함께 하는 즐거운 자리였습니다. 이런저런 얘기중 한 사모님의 말씀이 들렸습니다. 80이 넘도록 평생에 '참 잘했다' 하는 게 두가지가 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 이 목사 남편과 결혼한 것이고, 또 한가지는 5남매를 키우신 아버지께서 재산을 똑같이 5등분하여 나누어 주셨는데, 그 중 장녀이셨던 이 사모님께서는 어렵사리 사업하느라 가장 빠듯하게 지내는 동생에게로 씀직한 집한채 살 만큼 꽤되는 자기몫을 통채로 주어서 숨통을 돌리게 했었던 일이라는 것 이었습니다.
순간 내 머리 속이 남몰래 엄청 바쁘게 돌아갑니다. 내게 있어서도 무엇이 '참 잘 했다' 할 만한 게 있는 것일까? 뜬금없이 과연 너는? 이란 질문이 마치 어서 숨은그림을 찾아 내보라는듯 재촉하는것 이었습니다.

 

 

 

 

 

   살아 온 얘기들이야 그동안 먹어 온 밥그릇 수 만큼이나 많고 깁니다. 그러나 그중에 스스로에게 격려가 될 만한, '참 잘 했다' 로 추억할 수 있는 나만의 얘기가 있었던가? 과연 몇번이나 있었던 것일까? 뭐 뛰어나게 잘 하는게 없어 늘 기죽어 자책하다가도 그래도 때로 '그래도 잘 했다' 정도로라도 치부될만한 것이 있었던가?...다급한 마음으로 아직도 덜 삭은 세월을 점검해 보자니 앗싸! 웬 사연들이 그리 많았던 것인지 봄비맞은 쑥뿌리 같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한 해를 마무리 해야 하는 분망한 이 세모에 때아닌 '그래도 잘 했다' 찾기가 시작됩니다. 저 높은 북아현동 산꼭대기ㅡ 구름도 쉬어간다는 산동네에서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새댁시절로 부터 해서 한바탕의 짧지않은 작업이었지요.

 
 

 학교도 늦게, 군복무도 해병대,공군을 섭렵 제대하느라 세상엔 느지막 하게 등장한 내 남편. 그럴지라도 그럴싸하게 대기업에 스카웃되었을땐 새댁의 코가 하늘로 뚫리기 시작했었지요. 그러나 겨우 그 숨쉬기를 익혀 가는 중이었건만, 멀쩡한 자리를 마다하고 낮에는 코흘리개들 고아원 뒷바라지로, 밤이면 퉁부러진 식구들 섬기느라 종로에 있는 대입 학원 강사로 뛰는 남편만 바라보던 주변이니 계산에 없던 숨가쁜 생활을 하던 때 였습니다.
은평천사원(고아원)에 헌신하겠다고 나서니 왼걸 그림같은 집 한 채가 덜커덩 생겼습니다. 돌아보니 헌신을 결단하는 자를 챙기시는 하나님의 분명하신 통찰이셨습니다.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그 집 주인은 역촌동에서 한참이나 먼 장위동에 운동장 만한 자동차 수리 학원을 세웠기에 하루 빨리 이사를 가야하는 형편.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고, 그저 단촐한 셋 방 하나 얻으려던 우리에게 자기이름으로 은행대출을 받아 줄터이니 아무 염려 말고 무조건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간다는 세상인데, 무슨 이런 홍길동같은 일이람!?
그렇게 되어 3년 할부로 사게 된 이 집에 6명의 청년들이 들어섭니다. 이들은 6.25 전쟁고아들로 은평천사원 1기 형님뻘 되는 이들이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18세 이상되면 고아원에 거주할 수 없게 되어 있었지만 이들이 따로 독립해 나가 살 수 있는 형편이 못 되기에 그냥 원에 눌러 내 배째라 버티고 살수 밖에 없는 것이었지요. 뿐 아니라 사회에 직장을 잡을래도 재정보증 이나 신원보증이 되어야 되게 되어있어 고아원 출신이 직장을 잡는다는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을 때 였습니다.
이들이 찾아온 이유는 그들중 하나가 시내버쓰 운전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결론은 재정보증을 위해서 이 집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주어야 되겠다는 것 이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재정보증을 서 주겠느냐? 누가 우리를 제대로 보아 주겠느냐!? 누가 우리 뒤에 서 주겠느냐? 우리를 알 만한 사람이 세상천지에 누가 있느냐? 그 '누가?' 를 찾아서 예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우리집에 늘 오는 사람들도 아닌데...하면서 잠깐이지만 얼떨떨하고 황당한 마음으로 점심상을 차리는 중인데 , 아뿔싸! 이것은 마땅한 일이지 않은가? 내가 지금 무얼 주저하고 있는거지? 로 마음이 훌러덩 바뀌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웬 이럴수가! 그때는 잘 몰랐지만 후에 생각하니 결자해지 ㅡ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구나 싶습니다.
울렁이는 가슴없이는 정체불명의 생물일 뿐이라던가요. 저들에게 재정보증용 인감증명서와 인감도장을 주면 저가 자립하여 살 길이 열리겠구나 하는 마음뿐. 다른 생각할 여지도 없이 오래 지체하지 못하고 곧바로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그것들을 내 주었던 일단의 '사건!'
그들을 가슴으로 만날수 있도록 미리 그 예쁜 집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준비시켜 놓으신 하나님! 눈 밝고 귀 밝으셔서 스스로 살아계심을 밝히셨던 하나님! 핏줄 잃고 고향 잃은 이들의 막막한 분노와 좌절을 치료하시고 위로하시는 하나님...!
그 후 그 인감도장은 다른데 도용되지도 않았고, 그는 서울 시내버스 운전기사가 되었으며 얼마 간 후에 그것들은 다시 내게로 무사히 돌아왔던 것 이었죠. 평생을 두고 '참 잘 했다' 로 기억될 수 있는 것은 분명 내 가장 귀한 것으로 그 값을 치루어야 하는가 봅니다.
년전 영국 BBC 광고가 생각납니다.
유명한 남극 탐험가 어네스트 샤클톤 경의 '사람 구함' 광고였습니다.
"위험한 행로에서 함께 일할 사람구함"
ㅡ임금 박봉
ㅡ심한 추위
ㅡ장기간의 완전 흑암
ㅡ위험천만의 안정
ㅡ무사 귀국 의문
이었건만, 이런 험한 조건에도 엄청 많은 사람들의 청원이 놀랄만큼 넘치게 들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하게 시사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 분의 부르심이 이미 진하게 새겨져 기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 자기만을 위해서, 죽을 틈도 없이 투쟁하는것 같아도 그 깊은 속에는 가장 귀한 일에 가장 귀한 자신을 아끼지 않겠다는 심지가 여전히 숨쉬고 있다는 표징이었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든지 절대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자들임을 이미 스스로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아무도, 어떤 경우에도 그것을 부인하지 못 하는게 우리들의 본 마음이지 싶습니다.
살면서 배웁니다. 성경이 올곧게 들릴때는 나의 무지 곧 뾰족하고 모나고 서툰 모습을 발견하고 어떤때는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뿐 아니라 또 살아오는 동안 내 발목을 잡고 나를 멈추게 하던 것들…돌아보니 그런것들 모두가 다 나로 어쭙잖게 춤벙대지 못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였음에 감격합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내게 가장 귀한 것, 감사와 기쁨이 무엇인가를 분별케 해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마치 개인적으로는 이제 겨우 출애급의 분기점에 와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그럴지라도,
오늘은 칠푼이 같은 나 자신을 '그래도 잘 했다' 로 응원하며, 어느 특별한 날을 위하여 꼭꼭 싸 두었던 고운 다홍치마를 꺼내 입습니다. 헐레벌떡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똑같은 붕어빵 일과 속에서 찾아볼 겨를 조차 없었던 것,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참 잘 했다'를 일년에 한번쯤은 더듬어 보며 심기일전 해 볼만 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 특별한 날! 여전히 은퇴 노인 아파트 한 칸 방을 빌려 살지라도 나로 부자처럼 살게하는 그것! 그 잊혀진 비밀을 찾아 낸 날!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메카 ㅡ 하나님의 성을 바라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내 평생에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이다(시119:56)' 로 내 삶을 고백할 수 있게 하옵소서 기도드리며, 옷 깃을 여밉니다.
건강하고 평화로운 새해되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