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광야의 소리 2022-01/02 목차로 가기   18  
   

과 학

   
   

인류는 사회를 물질적 및 조직적으로 발전시켜 자연 그대로의 원시적 생활 대신 세련된 삶의 양태를 이룩했다. 물질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생활은 과학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며, 문명한 사회는 물질적 및 문화적 수준이 높은 사회다. 문명은 물질적 ∙ 기술적인 것으로, 문화는 정신적 ∙ 지적인 것으로 규정되기도 하지만 양자가 엄밀하게 구별되지는 않는다.

   과학은 보편적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 지식으로, 그 대상 영역에 따라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으로 분류된다. 거기에 과학은 또 수학과 논리학을 포함시킨 형식 과학과 철학을 포함시킨 인문 과학을 아울러 이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 은 흔히 자연 과학만을 이르는 말로 쓰여, 과학자는 곧 자연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표준이 확립된 과학적 방법은 문제를 끝까지 살피고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운 다음 그 가설을 사실에 근거하여 확인하는 고도로 훈련된 일련의 연구 방법이다.  

 

 

 

 

 

   언제부턴가 미국 사회에 과학을 불신하는 풍조가 만연되었다. 불신의 정도를 넘어 반감을 가진 사람도 많다. 우리는 이미 그 예를 기후 변화, 총기 규제, 예방약의 안전성 등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총의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았다. 그런 감정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 위기 때도 그것이 음모라거나 속임수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공중 위생 분야의 관리들을 악의적으로 비난했다. 마스크를 쓰라고 요구하는 상점의 주인이나 시의원들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디오를 통하여 보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비단 미국에서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오보, 역정보, 음모 따위의 전혀 근거 없는 잘못된 개념이 지구촌 전체를 휩쓸기도 했다.


   역병과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건전한 판단력과 식견을 갖추는 것임을 역사가 증명하는데,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 특히 선출된 사람들이 실망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어떤 상원 의원 하나는 ‘의사들이 돈을 벌려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망자를 부풀리고 있다.’ 고 말한다. 멀쩡한 젊은 녀석이 ‘코로나 사태는 거짓이다.’ 라는 문구가 쓰여 있는 모자를 쓰고 거리를 활보한다.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이 병이 발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조금 심한 독감이나 폐렴일 뿐이네, 머지 않아 사라질 것이네,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하면서 마스크도 쓰지 않고 나돌아 다니다가 자신이 감염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입원 환자가 되어 치료 받고 나와서도 별것 아니더라고 하면서, 바이러스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해서 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고 따른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현대인의 정신 능력이 먼 옛날 동굴에서 나와 달을 보고 돌을 던지던 원시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맞이한 21세기는 초기에 악성 유행병의 세기가 되었다. 2003년의 SARS에 이어 2009년의 H1N1 influenza (돼지 플루), 2012년의 MERS, 2014∼16년의 Ebola, 그리고 2020년의 COVID-19까지 20년 동안에 자그마치 다섯 번의 역병이 발생했다. 각각이 전의 것보다 더 고약했으며, 코로나바이러스 질병은 앞의 네 가지를 합한 것보다 몇 배나 더 고약했다. 아직 수십 년이 남았는데, 또 어떤 질병이 나타나 사람을 괴롭힐지는 아무도 모른다.


   코로나바이러스 질병의 발생 초기에 의료 기관의 관리들이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시행 착오는 학습 방법의 하나 아니던가. 전문가들은 전에 없이 서로 협력하여 1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예방약을 만들어 냈다. 지금까지 가장 단기간에 만들어진 예방약이 3년 걸렸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그들이 이번의 예방약을 제조하는 데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를 엿볼 수 있다.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때로는 과학적인 성과가 엉뚱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인류의 이익에 보탬이 될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이 과학이다. 과학의 철학은 무지의 벽을 허무는 데에 있다. 의학은 과학상의 진리를 개개의 환자에게 적용하는 것이고, 공중 위생은 과학상의 진리를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이다. 과학적인 발명이 인류의 번성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팬데믹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인식했다.


   최근에 실시된 과학을 어떻게 생각하는 가에 대한 설문 조사의 결과를 보면 일반 대중의 인식이 점차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상과는 달리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에 비하여 2020년 4,5월에 과학자들을 신뢰하는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던 것이다. 하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과학에 대한 정치적 또는 인종적 선호도는 우려할 수준이다. 당파에 따라 선호도에 큰 차이를 보이며, 흑인들의 선호도가 백인들의 그것에 비하여 현저하게 낮았다.


   뻔한 현실의 타당성도 아랑곳없이 인류의 미래에 크게 영향을 미칠 중대 사건을 그저 의심하려 드는 사람들이 많아서 탈이다. 그들은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전쟁에서 의료진들이 어떤 발전을 거두어도 인정하기를 싫어한다. 예방 주사를 맞는 것도 꺼려한다. 그런 회의론자들이 팬데믹의 대응 방법이나 예방 주사를 거부하면, 우리 모두를 보호해 주는 과학의 능력이 무력하게 되어 사회가 이전으로 돌아가는 시기를 한없이  늦추지 않을까 걱정이다.